비관과 낙관

세상 혹은 삶을 얼마나 비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매번 갈팡질팡한다. 반대로 허황된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던데, 나는 그런 꿈은 꿔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실망 말고는 할 게 없고 나는 수긍 말고는 할 게 없다. 나는 앞으로 ‘허용된’ 범위 안의 꿈만 꾸며 살지 않을까? 나의 꿈은 누군가에게는 택도 없는, 허무맹랑한 일이겠지만, 혹자는 나에게 더 큰 꿈을 꿔보라고 말하겠지. 그런 사람들은 초낙관주의자들일 거야.

나도 비행을 해보고 싶다.
저공비행도 아닌, 개미들처럼 지하를 헤집고 다니는 삶은 신물 나.
차근차근 비행 고도를 높여봐야지. 나의 꿈을 듣고 어떻게 그런 꿈을 꾸냐며 놀라는 반응이 나오는 사람들이 내 지인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창 별을 향해 화살을 쏠 나이인 스무 살에 대학 간판이 전부인 삶을 사는 게 정상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 불만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공비행 중인 친구 한 명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듯 적어도 꿈을 꿀 줄 아는 사람들인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고, 서로의 가치를 안다. 지금은 우리 둘 다 슬럼프이지만, 같은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어 괜찮다. 너는 내 inspiration이야. 나를 높게 사주고, 내 성공을 바라는 지적 교감의 훌륭한 파트너.

너는 생각이 많아 보였고 요새 술을 많이 마신다고 했지. 세상이 널 괴롭히냐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하던 너.
14, 15살 때부터(내 경우엔 그랬다) 자살 드립이 일상적인 대화가 되는 현상을 나는 왜 여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그런 우리에게 낙관이 조금만 더 허락되었으면. 떨어져서 죽네 마네 웃으며 얘기했지만 그 속에 곪아있을 심장을 알아. 감히 그 슬픔의 깊이를 예측도 못하겠지만 기도는 해줄 수 있어.

카페에서 ‘하나님의 사랑이’(5일 동안 35번 들은 요새 최애곡) 들으면서 공부하는데, 다음에는 조금 징징대겠다는 친구의 말에 너무너무 슬퍼지더라. 감정이 다 죽은 요즘, 갑자기 감정의 폭풍이 몰아쳐 황당했다. 바로 펜을 내려놓고 제발 이 친구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 시작하면 남들 힘든 게 눈에 안 들어올 테니 그 기도가 내 마지막 자비였다고 생각하렴.ㅎㅎ 부디 너무 힘들지 않길. 내 생각만 하면 안쓰럽다던 너. 이제 그거 쌍방이야. 적어도 울 줄은 아는 너라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힘들 때는 누군가와 포옹하고 엉엉 울면서 이겨내길 진심으로 바라.

‘하나님의 사랑이’는 저스틴이 추천해 준 ccm이다. 장르도, 창법도, 분위기도 다 마음에 안 들고 그나마 멜로디 자체만 괜찮은 곡인데, 이상하게 이걸 들으면 슬퍼진다.
그것보단 고차원의 감정인데 표현이 안된다. 신기한 건, 저스틴도 똑같단다… 기독교인이라 통하는 건가.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삶 가운데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이게 가사의 전부인데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듣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종교의 힘인가.

청춘이라는 단어는 파란색이다.
푸르고 흰 꽃들이 찬란히 피어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청춘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가늠도 할 수 없다.
매일 벌이는 치열한 사투가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되어 힘든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것과 관련하여 나는 처음으로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다. 신께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냐 묻는다면 멋쩍은 미소를 지으실까, 다 이유가 있다고 답하실까.

2023 수능 며칠 전, 김민정T 종강날 민정쌤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너희가 이 시기에 얼마나 빛났는지 너희 스스로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수고했다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한다. 날개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번데기 상태로 살았던 그때의 우리가, 역설적으로 빛난다고 표현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하루종일 같은 자세로 앉아 감옥에서와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때 우리의 눈이 책을 얼마나 무섭게 노려보았는지, 우리의 뇌가 그 두 글자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소확행’이라는 것을 누리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경험자가 아니라면 모를 거야.

내 인생이 달린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어느 날, 왜 그때보다, 고작 인간관계가 문제였던 중학생 때 훨씬 힘들어했는지 생각해 봤다. 그 답은, 중학생 때의 틀어진 인간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지만 수능은 내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수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한 채 폭풍을 그대로 맞고 있기밖에 못하는 것보다 더 거지 같은 상황은 없다. 내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사실 이것도 수능 희망 편일 뿐이다. 수능은 최소 20%가 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로 인해 내 땀과 눈물의 의미가 없어지는 생각을 하면 기절초풍할 것 같다. 내가 컨트롤 못하는 게 있다는 사실이 내가 수능을 두려워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다. 이걸 듣고 희연이가 해준 말: 통제할 수 없는 걸 신경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내가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현재로서 수능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까. 희연이가 한 말이 백번 맞다는 건 자명하다.

하나님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마음과 믿음을 주세요.
작은 일에 감사하며 남들을 돕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세상과 삶을 조금만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그 친구에게 듬뿍 내려주세요.
저와 그 친구, 그리고 제 주변인들 모두의 비관으로 가득 찬 마음에 노오란 낙관이 스며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밥이 되든 죽이 되든 해낼 거니까!!😆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