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우울증 증상들 (DSM-5 진단 기준)

아래는 DSM-5 주요 우울 장애 진단 기준이다. 아래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의 증상이 2주 연속 지속되어야 하고, 1번 혹은 2번 항목 중 최소 하나를 만족해야 한다.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 기분에 대해 주관적으로 보고 (예: 슬픔, 공허함, 절망감) 하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됨(예: 눈물 흘림)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과민한 기분으로 나타나기도 함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또는 모은 일상 활동에 대해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됨
체중 조절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의미 있는 체중의 감소나 증가 (예:1개월 동안 5% 이상의 체중 변화), 거의 매일 나타나는 식욕 감소나 증가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과다수면
거의 매일 나타나는 정신운동 초조나 지연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나 활력의 상실
거의 매일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최책감을 느낌
거의 매일 나타나는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님),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 사고, 또는 자살 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나의 경우 1, 2, 3, 6, 8, 9는 확실히 경험했거나 경험 중이고, 4는 애매하며 나머지 5, 7은 경험해본 적 없다.

1번. 심한 날은 하루에 눈물이 수차례 터져 나오고, 기본으로 늘 우울감을 느낀다. 과민함을 경험한 적도 있지만 많진 않음. 간단한 일도 버겁게 느껴져서 침대에서 나오긴 했지만 계속 소파나 매트리스에 엎드려 있곤 함. 근데 그게 힘이 없는 것과는 좀 다름.

2번. 그냥 진짜 재밌는 게 없다. 단 하나도. 친구랑 바에서 술 마시며 진중한 대화를 하는데도 그냥 집에 가고 싶더라.

3번. 딱 5%의 체중이 빠졌다. 식욕은 0에 수렴하고, 특히 아침밥 먹기가 힘들다. 이제 완벽한 저체중이 되었다.

점심과 저녁도 서너 숟갈 뜨면 내려놓고 싶다.

4번. 이게 애매한 이유가 지금 재수 학원을 다니고 있고, 8살 때부터 쉬지 않고 7시 언저리에 기상하는 생활을 했더니 아침에 일어나는데에는 문제가 없다. 언제나처럼 힘들긴 하지만. 근데 최근들어 피곤한데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깬다.

6번. 말 그대로. 활력이 진짜 없다. 늘 학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노래를 불렀었는데.. 또한 사회 생활을 위해 웃음을 짜낼 뿐.

7번. 나는 자존감이 높다. ㅎㅎㅎ 근데 언젠가부터 자기 효능감이 느껴지지가 않더라. 소확행과 뿌듯함으로 연명하는 게 수험생인데, 이 두 감정이 모두 안 느껴지니 당혹스럽다.

8번. 초기에는 수학 계산 실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었는데 약을 복용 시작 후 바로 괜찮아졌고, 최근에는 대화를 할 때 중간 중간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나만의 상상에 빠져있다.

9번. 약효가 너무 잘 돌고 있는 요즘은 안 그러는데, 자살을 실행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냥 관성때문인지 자살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외. 수면욕을 제외한 모든 욕구와, 의욕, 의지가 전혀 없다.

모든 욕구와 의욕을 잃은 느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자해를 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자해 할 뻔 했는데 겨우 참았다.

그냥 어떻게 재수 생활 한 번 잘해보자는 생각이 안 들고, 진정 심장이 죽은 것 같다.

감정도 죽었다. 그냥 안 느껴진다.. 전술했듯 행복이나 뿌듯함같은 비교적 고차원적인 감정들이 안 느껴진지 오래다.

그리고 뇌가 시끄럽다. 명확하지 않고 탁한 생각들의 덩어리가 뭉텅이진 채 뇌 속을 나뒹군다. 그냥 뇌 전체가 회색의 솜 덩어리같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또한 이건 약 부작용일 수도 있는데, 정말 갑자기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온다.

그래도 요즘은 항우울제들이 내 몸에 너무 잘 맞아서 별다른 심적 고통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놀랍도록 평온하고 지루하지만 고통도 없다.

나라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잃어간다.

되찾을 수는 있을까.ㅋㅋㅋㅋㅋㅋㅋ

antidepressive strug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