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도망칠 거야

내가 왜 우울증 걸린 채로 하루종일 학원에서 썩어야 하는데
얼마나 꿈 많고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는데
왜 되찾으래야 되찾을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뒤로 하고 허구한 날 좁다 좁은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어야 하는데.
락만 듣던 내가 슬프고 잔잔한 노래만 듣네
10초마다 드는 살기 싫다는 생각을 억누르고 모의고사나 풀고 앉아있어야 되는 게
참
기꺼이 다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부모님이 떠올라 어림도 못 내고 있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거 아시면 다 관두고 쉬라고 하실 텐데
그렇다고 대학이라는 묵혀둔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
쉬고 재도전? 어림도 없다 또 다른 1년을 자괴감과 싸우며 보낼 순 없어
즉 어떻게든 버티거나 다 끝내버리는 두 가지 선택지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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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위해 지금까지 버틴 걸까
아무리 행복해져도 이 불행을 완전히 잊을 만큼, 벗어날 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눈물 나게 행복한 시간이 찾아와도 지금 그러하듯 냄새나는 시커먼 기억의 뭉텅이가 내 발목을 붙잡겠지.
영원히 거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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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유를 찾는 짓을 그만뒀다.
어차피 없는 것 같아서.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를 위한 삶을 19년을 살았는데 아무 성과도 없는 걸 보면
남은 삶은 타인을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운이 조금 없었을 뿐인 사람들을 위해
조금 운이 좋았던 내가 타고난 것들을 이용해서 헌신하는 것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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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음은 높은 확률로 고통을 수반하는지.
나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날 사랑하는 이들의 심리적 고통 또한.
나는 또, 또 운명을 원망한다.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아프지 않게 뜰 방법이 없다는 게 날 더 아프게 한다.

7년을 용감한 겁쟁이로 살았다.
죽음을 겁내면서도 용감하게 살아갔다.
어떤 이는 20년을, 또 다른 이는 평생을 용감한 겁쟁이로 살아간다.
내가 겪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난 이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데
왜 세상은 인간에게 고통을 못 줘 안달인지
특권층인 나도 이 정도인데, 운이 없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힘들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거대한 운명과 싸우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신의 존재에 죽어도 확신할 수 없는 이유이다.
왜 이딴 세상을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