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행복 거부에 대한 가설

행복과 평온에 거부감을 느끼고 대놓고 절망을 갈구하는 요즈음.

고통에 대한 익숙함이 사라지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통이 오면 완전히 무너져 버릴테니
차라리 그나마 감당 가능한 고통 속에서 익숙함을 유지하면서 더 큰 고통을 체감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거 아닐까
즉, 차악이 곧 최선인 상황.

그래 설마 내가 감정적 마조히스트겠어

약효가 돌아 며칠 째 평온하고, 고통에 대한 익숙함이 옅어지면 역설적으로 두려움이 앞선다.
고통 앞에 무기를 하나 하나 내려놓고 맨몸이 되어가는 느낌.

“다 나아질 거야.” 안 나아져도 되는데요? <=얘는 해결됐네.
“미래에는 다 잘 풀릴 거야.” 저는 미래가 필요 없어요. 죽으면 돼요.
“모두 다 지나갈 거야.” 아니 미래가 어떻든 당장 소멸하고 싶다니까요.

나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낭 ‘너무 지쳐서’라고 퉁치기엔 설명이 더 필요한 느낌이야.

이렇게 스스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긍정적 상태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또 다른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더 아프고 싶다. 약을 먹고 상태가 좋아지면 편한 것보다도 거부감이 먼저 느껴진다.

대체 뭐가 날 이토록 비이성적인 상태로 만든 걸까.

아니 이쯤 되니 무의식의 수준에선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 과학(생물)을, 그리고 최근에 정신분석학을 접하며 느낀 건,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려고 정말 부단히도 노력한다는 것이다. (진화가 너무 느려서 그게 빡치긴 하지만.) 나의 이런 이상한 생각들도 나를 지키려는 방어기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제발..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나의 특이함이 무지개색이 아니라 사실은 무채색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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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위 글을 쓰기 전에 끄적인 글이다. 독서실에서 아이패드로 공부 외의 것을 하기엔 눈치가 보여서 종종 종이에도 써내려가곤 한다.

나는 평온을 바라지 않는다.(라는 나의 생각이 너무너무 어색하다고ㅠㅠ)
남들은 나에게 “그게 힘든 거야”라고 말하지만 난 정말 힘들지 않단 말이야. 지금이 딱히 평온과 거리가 먼 상태라고 느껴지지도 않고, 설령 그게 맞더라도 나는 질풍노도같은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근데 또 모순적으로 내가 힘들(었)다는 걸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줄곧 아프고 싶었던 주요한 이유 두 개 중 하나임.)

최근에 약을 안 먹고 뻐팅겼다가 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었는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자살사고를 겪으면서도 단약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그래 이렇게 약을 안 먹었을 때는 진짜 미칠 것 같고, 약을 먹어도 종종 힘들다는 생각이 올라오며 평온할 때도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말, 정말로 딱히 전반적으로까지 힘들지는 않단 말이야.

내 무의식이 피를 철철 흘리며 뒤지기 일보직전이라도 난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내 의식은 멀쩡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이면에는 가장 힘들었을 적과의 끝없는 비교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때의 절반 미만의 고통은 고통으로 못 느끼는 것 같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인간은 진정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발작적으로 튀어오르는 좋지 않은 생각들에도 익숙해져 간다. 또한 SSRI를 복용하기 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초월적이고 허무로 가득찬 생각을 했었고, 더이상의 초월은 불가하다 생각했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대체 몇 차원을 넘나드는 건지 모르겠다. 체감 상 초끈이론 수준까지 간 것 같다. (초끈이론에선 11차원의 시공간을 전제로 한다) 한마디로 지랄났다 이거다.
지금 나에게 의미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근데 또 우울증의 난동을 초월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 뇌에선 논리와 무논리가 몇 달 째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고 나는 내 생각을 못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논리의 위력을 인정한다. 이 자식 결코 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울증과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된 결과일 수도 있지만) 내가 실은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고, 의지도 약하고, 오르지도 못할 너무 높은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진짜 모습으로 살 바엔 삶을 포기하고 싶다. 내 한계가 고작 바로 저기 있다는 게 끔찍이도 싫다. 못 받아들이겠다고요 진짜.. 너무너무 싫다고.

그럼 의지를 발휘해서 하기 싫은 공부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데..
평생 날 따라다닌 의지박약으로 모자라 허무주의, 염세주의, 그리고 누적된 스트레스의 또 다른 결과물인 정신 질환들까지 합쳐지니 대환장 파티가 따로 없다.

이 와중에도 나는 내 탓을 하고 있다.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주변인들도 암말 안 하는데 내가 나서서 나 자신을 질책한다. 나는 시발 나에게 너그러워지질 못한다. 그런 나에게 화가 난다. 죄책감이 그저 병적 증상이라는 것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나에게 또 화가 난다. 이름하야 뫼비우스의 분노의 띠다.

초자아 그만 나대라…. 자아가 초자아의 노예로 전락한지 오래다.
내 이드여 RIP
초자아의 독재 정권 시대~

이 장황하고 왜곡적인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싫다.